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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저는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발길이 향합니다. 여름 내내 더위에 치여 수산물 코너를 스쳐 지나쳤던 게 후회될 만큼, 가을 바다는 품에 안은 것들이 다릅니다. 10월은 제철 횟감과 찜용 수산물이 동시에 절정을 맞는 시기로, 돌돔·흑돔·전갱이·꽃게 같은 이름들이 수족관 앞에서 괜히 지갑을 열게 만드는 계절입니다.

추석 지나면 진짜 시작되는 돌돔 이야기
돌돔 하면 여름 생선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건 반만 맞는 말이었습니다. 6~8월에 가장 많이 잡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맛의 정점은 추석 무렵부터 찾아옵니다.
돌돔은 제주도에서 산란을 마친 뒤 연안으로 이동해 왕성하게 먹이 활동을 합니다. 여기서 '연안 이동기'란 산란 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해조류와 성게, 전복, 뿔소라 같은 먹이가 풍부한 얕은 바다로 접근하는 시기를 뜻합니다. 이때 살집이 급격히 불어나고 기름기도 차오르죠.
통영, 여수, 삼천포, 포항 일대에서 10월 돌돔을 맛본 미식가들이 "이게 진짜 돌돔"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쫀득하면서도 사과를 씹는 듯한 서걱거리는 식감, 그리고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기름진 단맛은 여름의 그것과 결이 다릅니다. 자연산 기준으로 1kg이 넘어야 이 맛이 제대로 납니다.
가격은 솔직히 만만치 않습니다. 산지 기준으로 킬로그램당 8만~9만 원, 소비자 단계에서는 그 두 배 가까이 각오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돌돔 회를 먹었을 때 가격표를 보고 잠깐 망설였는데,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그 망설임이 사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특별한 날, 제대로 한 번 드셔보실 가치가 있는 생선입니다.
여수에서 '능성어'로 불리는 흑돔의 계절
흑돔, 정확히는 '흑발이'라고도 부르는 이 생선은 여수에서는 능성어, 꽃능성어라는 이름으로 팔립니다. 처음 여수 시장에 가서 "흑돔 있어요?" 했다가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납니다.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흑돔은 제주도보다 여수·거제·고흥 쪽 연안에 더 많이 분포합니다. 과거에는 워낙 귀해서 자바리(다금바리)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는데, 치어 방류 사업이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개체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여기서 치어 방류 사업이란 수산자원 회복을 위해 인공 부화한 어린 물고기를 바다에 놓아주는 정부·지자체 주도의 자원 증식 정책을 말합니다. 덕분에 10여 년 전과 비교해 흑돔이 꽤 대중화됐습니다. 실제로 제가 작년 이맘때 여수 풍물시장에서 흑돔을 세 마리 사서 먹었는데, 살집이 얼마나 두툼한지 놀랐습니다.
9월부터 11월 초중순까지가 흑돔의 몸통 둘레가 가장 굵어지는 시기입니다. 겨울 월동을 앞두고 먹이를 왕성하게 먹으며 살을 찌우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흑돔을 서너 시간 숙성해서 먹으면 탱글탱글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배어나옵니다. 숙성회란 일정 시간 저온에서 어류의 근육 조직을 이완시켜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이 발현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된 일식집이나 숙성 전문점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격 부담이 있다면 여수 수산시장 같은 재래시장을 이용하시는 게 그나마 현실적입니다.
고등어보다 훨씬 맛있다는 전갱이, 10월이 기회
솔직히 전갱이를 제대로 먹어보기 전까지는 '그냥 작은 고등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10월에 포항이나 부산 쪽 횟집에서 전갱이 회를 먹어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갱이는 늦가을로 접어들수록 피하지방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피하지방이란 껍질 바로 아래 층에 쌓이는 지방층을 말하는데, 이것이 두꺼워질수록 회나 구이로 먹었을 때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진한 고소함이 납니다. 특히 40cm를 넘어가는 대형 전갱이는 감성돔 50cm급과 맞바꾸지 않겠다는 낚시인들의 말이 괜한 과장이 아닙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서울·수도권 대형마트에서도 전갱이를 볼 수 있긴 합니다. 한 팩에 만 원 안팎으로, 갈라서 소금을 뿌린 뒤 고등어자반처럼 구워 먹으면 생각보다 훌륭한 밥반찬이 됩니다. 하지만 회로 드시고 싶다면 포항, 부산 쪽 전갱이 횟집이 확실히 다릅니다.
제주도에서는 '각재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현지인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각재기회를 처음 먹었을 때 그 부드러우면서도 기름진 맛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10월이 이 생선의 맛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이니, 가을 여행지에서 만난다면 꼭 드셔보시길 강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 10월 전갱이는 피하지방이 최고조에 달해 고소함이 진하다
- 제주도에서는 '각재기'로 불리며 현지인들의 별미로 통한다
- 40cm 이상 대형 개체는 고급 스시야에서 주로 취급한다
- 마트에서 구입 후 자반처럼 구워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꽃게와 대하, 시장에서 고르는 법이 따로 있다
얼마 전 가족들과 시장에 들러 꽃게와 흰다리새우를 사다가 집에서 쪄 먹었습니다. 별다른 양념 없이 그냥 쪘는데도 담백하고 달큼한 맛이 외식 못지않았고, 가족들 반응도 좋았습니다. 그때 느낀 건, 제철에 제대로 된 걸 고르면 조리법이 단순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꽃게는 9월부터 본격 시즌이 시작되어 지금이 한창 수율이 좋을 때입니다. 여기서 수율이란 게 전체 무게 대비 먹을 수 있는 살과 내장(게딱지 안 꽉 찬 내용물)의 비중을 뜻합니다. 수율이 높을수록 가성비가 좋은 게죠. 꽃게를 고를 때는 집게발을 잡아봤을 때 묵직하게 힘이 느껴지고 배딱지가 단단히 닫혀 있는 것을 고릅니다.
대하(자연산)와 흰다리새우도 지금이 제철입니다. 자연산 대하는 충청남도 안면도, 무창포 일대가 산지로 유명하고, 구이나 찜으로 먹는 것이 단연 맛있습니다. 흰다리새우는 대부분 양식이지만 이 시기에는 살이 꽉 차 있어 가성비 면에서 훌륭합니다.
한 가지 제가 챙기는 점이 있는데, 수산물은 제철이어도 보관과 신선도 관리를 놓치면 맛도 안전도 모두 흔들립니다. 구입 후 바로 냉장 보관하고, 날것으로 먹는 수산물은 구입 당일 소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어패류는 5℃ 이하 냉장 보관이 기본이며, 날것 섭취 시 위생 상태와 원산지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제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안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원산지 확인도 꼭 하시길 권합니다. 출처: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수산물 원산지 미표기 제품은 수입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이 유독 저렴하거나 원산지 표기가 없다면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10월 돌돔은 어디서 사야 가장 신선한가요?
A. 통영, 여수, 삼천포, 포항 등 산지 인근 수산시장이 가장 신선합니다. 서울에서는 노량진수산시장 새벽 경매(새벽 3~6시)를 이용하면 산지에서 당일 올라온 물건을 구할 수 있고, 자연산 여부와 크기(1kg 이상)를 꼭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Q. 흑돔(능성어)과 자바리(다금바리)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둘 다 농어목 바리과 어류로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공통점이지만, 자바리는 주로 제주 해역에서 잡히는 최고급 횟감이고 흑돔(능성어)은 여수·거제 등 남해안 연안에 더 많이 분포합니다. 과거엔 흑돔이 더 희귀해 비쌌지만, 방류 사업 이후 접근성이 높아졌습니다. 맛은 취향 차이로, 흑돔의 은은한 단맛을 더 선호하는 미식가도 많습니다.
Q. 꽃게 살 때 암게와 수게 중 어느 게 더 맛있나요?
A. 10월 가을 꽃게는 수게가 맛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봄철은 알이 꽉 찬 암게가 인기이지만, 가을에는 수게 살이 통통하게 올라 달큰하고 담백한 맛이 납니다. 제가 직접 비교해봤더니 가을 수게는 살 자체의 질감이 한층 탄탄했습니다. 구입 시 배딱지 모양이 뾰족하면 수게, 둥글면 암게입니다.
Q. 전갱이 회는 꼭 산지에 가야만 먹을 수 있나요?
A. 회로 드시려면 포항·부산·제주 같은 산지 인근 횟집이 가장 확실합니다. 서울에서는 일부 고급 스시야에서 제공하기도 합니다. 다만 마트에서 구입해 자반처럼 구워 먹는 방식도 충분히 맛있습니다. 제 경험상 소금을 뿌려 30분 정도 재웠다가 올리브유를 약간 두른 팬에 구우면 집에서도 꽤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결론
10월 바다는 정말 너그럽습니다. 돌돔·흑돔처럼 고급 횟감이 살집을 한껏 불린 채 기다리고 있고, 전갱이는 피하지방이 절정에 달해 고소함이 넘치며, 꽃게와 대하는 수율이 좋아 시장만 가도 풍성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제가 느낀 건, 제철 수산물의 매력은 결국 '타이밍'에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생선이라도 언제 먹느냐에 따라 맛의 격이 달라집니다. 다만 제철이라는 이유가 신선도나 위생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구입 시 원산지와 신선도를 꼼꼼히 확인하고, 보관과 조리 과정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맛있고 안전한 수산물 식사의 완성입니다. 이번 가을, 시장에 한 번 나가보시길 권합니다.